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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박가연: 작은 것들의 신] 2019.01.13-02.17 갤러리밈 

 

나는 그 앞에 서있다. 

깊이 들어갈수록 알 수 없는 이미지들에 휩싸였다. 휘몰아치는 이미지 속에서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애타게 찾아왔던 것. 

 

하지만 나는 알 수 없다.

그 것들의 의미를. 가까이 가기위해 갈망했지만 어쩌면 늘 한자리에 있어왔던 것들.

가지려해도 손가락 사이에서 아스러지는 고운 모래처럼- 

발자국을 옮길 때 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짙은 먹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허공에 손짓하는 것처럼 (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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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룬다티 로이의 동명 소설에서 제목을 빌어온 이번 전시는 ‘주위에 있는 작은 신(神)‘(믿음, 구원을 위한)’을 주제로 작품 세계를 풀어냅니다.

 

1회 개인전 <하늘과 바람 대신 그림자(2018년5월, 아트랩반)>에서 ‘죽음-신(神)‘에 대한 주제를 반투명 필름에 인쇄하여 긁어내거나 콜라주를 하고 라이트박스를 이용하여 무거운 느낌의 드로잉을 연출하였다면, 이번 전시<작은 것들의 신(2019년1월,갤러리밈)에서는 반투명한 트레이싱지를 주 재료로 이용하여 조금 가벼운 느낌으로 자연에 깃든 민간신앙적인 ‘신(神), 구원’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주로 거시적 관점의 거대 담론으로 현상에 개입하는 것이 아닌, 작가라는 한 개인이 시대를 통해 체화된 삶의 단편을 통해 작품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최근 관심사는 ‘민속신앙’과 ’미신’처럼 일상 속에 묻어나는 ‘믿음과 구원’에 대한 것들입니다. 민속신앙은 비과학적이고 종교적으로 망령되다고 판단되는- 점, 굿, 금기 따위를 말하는데 과학기술이 날로 발전한 지금, 민간신앙은 허튼소리 또는 미신으로 취급받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속한 한국인의 생활에서 민간신앙은 제사(조상숭배), 세시풍속과 통과의례 등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양태로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구상하면서 작가는 유년기에 시골집 부엌에서 나무가 무성한 뒤뜰을 향해 문을 열고 달빛에 일렁이는 정화수에 기도를 하시는 할머니를 떠올렸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정식 종교’라 할 수 있는 종교들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과학이 발달해 가면서 인간성은 소외되며 ‘종교’의 힘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민속신앙'과 종교들이 다른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은 어떠한 대상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가질 수 있길 바라고) 구원을 바랄 뿐입니다.

 

전시에 사용 된 소재는 거창한 신(神)이 아닌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연물들이며, 그 속에 깃든 민속신앙적 상징들을 모티브로 하여 전시를 구성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당산나무(성황당나무), 조약돌(돌탑). 황금빛 아우라를 뱉어내고 있는 산(산신령), 매화(금전), 달 등 입니다.  

 

하지만 당산나무는 그 굵은 둘레의 줄기보다 하늘에 맞닿은 가느다란 가지 위주로 포착되어 있고, 돌탑은 분해되어 그 일부만이 공중에 매달려 있어 (작은 것들의 신) 본래의 형체를 알 수 없도록 설치되어 있습니다. 5만원권에 그려져 있는 매화(그 때는 가질 수 없었던 것들)는 구원의 종류가 될 수 있을까요..

 

가느다란 실 끝에 매달린 때 묻은 동앗줄(핑크빛 티켓)과 겹겹이 시멘트바닥과 섞여 있는 달(마이너스 38만4천km)은 우리의 믿음과 그 대상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합니다.

 

황량한 나무. 빛이 바랜 갈대와 이미 산화되어버린 물고기의 머리. 액자 속 여러겹 쌓아올린 반투명한 종이는 희뿌옇게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대상들을 향해있습니다. 작가는 기억과 일상 속에서 포착한 이미지들을 통해 구원에 대한 갈망과 믿음에 대해 표현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구원의 끝은 조용한 죽음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업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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