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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빛 대신 그림자

[박가연: 하늘과 빛 대신 그림자] 2018.05.16-05.31  아트랩반

 

황혜림 (RAWgallery Curator)

 

이미지는 한때 누군가 무언가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리고 박가연의 이미지에는 죽음이 담겨 있다. 본다는 것은 일종의 선택이다. 어린시절 박가연은 보았다. 자신의 눈을 가리던 어른들의 손 틈에서, 죽음을 격리시키는 사회의 고정관념의 틈에서. 아이의 순수한 호기심과 상상력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아이는 자신의 망막을 통해 죽음을 오롯이 받아들였다. 그것은 기록되지 않은 자신만의 시각-사건이었다.

 

작가는 자신을 잠식 시키는 불안과 우울 속에서 어린시절 목격한 도륙 장면을 다시금 떠올렸다. 증오스러울 만큼 무자비했던 폭력성. 생명을 대상화 시켜 손쉽게 제거해버리던 인간의 야수성.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생명을 죽이기 위해 터져 나오던, 삶을 향한 인간의 에너지. 죽음을 앞둔 생명의 격렬한 몸부림. 그 시절의 어린 소녀는 죽음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거나 닫힐 수 있는 의미의 것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죽음에 내포 되어있는 천박함과 우아함, 잔인함과 경이로움. 더불어 죽음의 기저에 깔려 있는 권력관계까지. 

그것은 저항할 수 없는-끝나지 않는- 무한한 파괴인 동시에 숭고한 에너지였다. 박가연은 죽음을 언어로 설명하기에 앞서 피부로, 눈으로 체득했다. 그렇기에 그가 포착하는 이미지에는 항상 죽음이 담겨있다. 그것은 무의식적 행위이자 체득된 삶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죽음의 적나라함은 자칫 페티시-이미지: 오류로 환영으로 환상으로 믿음으로 관음증으로 유인될 수 있기에 그 반짝이는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작가는 어둠을 선택했다.

 

하늘과 빛 대신 그림자

박가연의 기존 이미지들이 죽음-대상을 강조하기 위해 설계한 의도된 작업이었다면, 화면에 어둠을 끌어들이면서부터 죽음-대상은 무의식-이미지 조각들과 함께 몽타주되기 시작했다. 대상은 자신을 감싼 어둠으로 인해 배경이 되는 다른 이미지들과 함께 연결되었으며, 모든 이미지들은 죽음에 대한 메타포라 할 수 있는 어둠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의 주변을 맴돌게 되었다.

 

이를 위해 새롭게 사용된 것은 폴리카보네이트라는 플라스틱 판이다. 인화지가 아니기에 출력된 이미지는 온전히 스며들지 못한다. 그저 판 위에서 검게 굳어 임시로 고정 되어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 검은색 표면에 조각을 하듯 다시금 드로잉을 새긴다. 이미지 편집을 통해 똑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음에도 굳이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의 이미지가 0과 1사이의 굳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선 하나 하나를 통해 무의식 속 떠오르는 이미지-파편들을 새기며, 죽음과 잊혀진 것들을 조합 시킨다. 그리고 긁혀져 나간 어둠의 자리에는 죽음을 감싸는 빛이 스미며 유기적으로 호흡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다. 화면 속 개별 이미지는 실재했던 것이나, 완성으로 드러나 보이는 작품 이미지는 철저하게 비현실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비-실재가 빚어내는 환상의 이미지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로 내면의 은밀한 기억을 자극한다.

 

Minor swing

작가의 작품은 한 눈에 읽히지 않는다. 작품을 보기 위해 내딛어야 했던 발걸음과 같이, 처음에는 그저 폴리카보네이트 표면 위를 맴돈다. 그리고 서서히 그 입자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속에는 오징어의 눈알, 생선의 대가리, 담벼락 밑 이름 모를 풀, 밤 하늘의 별 등과 같이 익숙한 대상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minor swing” 연작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소재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화면 속 이미지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탁월한 기교를 부렸기 때문이 아니다. 늘 보았음에도 보지 않았던 것들. 의미두지 않은 것들에 대한 새로움이다. 즉 존재가치에 대한 전복에 기인한 낯섦이다. 그림 속에 주의 깊게 들어가는 순간 파편으로 떠돌던 의식의 가름망은 전복된다. 그 표면의 소란스러움을 넘나들며 죽음은 다시 에너지로 삶으로 기억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박가연의 작품은 상징으로 들어찬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보는 이가 이미지 속으로 들어가 춤추듯 이미지-틈을 자유로이 유영해야 한다.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라는 의미의 넘나듦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기에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생명이라는 의미가 갖는 실재조건과 행해지는 죽음의 외면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일이다.

 

생선의 머리를 타고노는 듯, 도루묵의 아가미를 감싸 안은 산을 오르듯, 곡예 하듯, 춤추듯 기계적인 반복에서 깨어나 ‘생’을 바라보기를. 굳어버린상상과 허덕이는 삶 앞에서 무엇보다 힘차게 맥동했을 생명의 죽음을 통해 작가는 다시금 ‘삶’을 바라보고 작품으로 드러낸다.

 

잃어버린 것. 사라진 것. 그리고 다시 솟아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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