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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장소와 마주한 인간 형상의 흔적들

박가연 작가론

[작은 것들의 신](갤러리 밈,2019)

[은둔자의 밤](스튜디오148, 2019)

[망월(望月)](인디아트홀 공, 2021)

 

 

안소연

미술비평가

*

 

천장의 중심으로부터 바닥 모서리까지 쭉 펼쳐 늘어진 여덟 개의 색 천은 육면체의 공간 내부를

흐릿하게 둘로 경계 짓는다. 팔괘(八卦)의 구조로 천장에 고정시킨 지지체는 마치 지붕을 떠받치

는 보(樑)처럼 공간 사방으로 향하는 힘의 중심축으로서 바닥과 마주하는 절대적인 수평의 힘을

야무지게 드러낸다. 그 팔각 도형의 각 변으로부터 기둥처럼 아래로 하강하는 팔색 천들은 비스

듬히 사방으로 흩어져 벽과 바닥이 맞닿는 모서리로 파고드는데, 그 끝이 공간의 경계를 잠재적

으로 더 확장시켜 놓는다. 요컨대, 팔괘로부터 뻗어 나온 팔색 천들은 텅 빈 공간에 또 다른 내부

와 외부의 경계를 만들어 놓되, 그 양 끝이 다시 본래의 공간 너머-팔괘의 틀 안의 세계와 육면

체의 건축 공간 바깥의 세계-로 무한히 확장되는 모양새를 이루고 있다. 박가연의 <오래된 농담

>(2021)은 공간-장소-터전-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그의 말대로, 그는 “지름 2미터 60센티미터의

‘팔괘’ 모양 스테인리스 스틸 프레임을 ‘집 터’로 삼아 천장에 고정”시켜 놓고 (개인의 근원과 관

련된) 집을 연상시키는 터의 경계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오래된 농담>은 그렇게 시작한다. 천장의 팔괘( )로부터 지붕과 벽이 놓이고, 바닥 중앙에

는 그것과 수평으로 마주하는 정사각형(□)의 노란색 천이 삶의 “자리”를 규명하고 있다. 달빛 같

은 둥근(○) 조명 빛은 수직으로 하강하면서 팔색 천이 만들어 놓은 팔방(八方)의 흐릿한 경계와

노란색 천이 나타내고 있는 사방(四方)의 또렷한 틀 사이를 감싸서 비추며 매개하고 있다. 박가연

은 집(堂)이자 무대(場)와도 같은 이 공간에 누군가의 살림을 가져다 두었는데, 고가구와 기물들

을 한데 쌓아놓고 그것을 받침대 삼아 익숙해 봬는 크고 작은 형상들을 연출해 놓았다. 학, 사슴,

복숭아, 박쥐, 연꽃 등 십장생으로 꼽히는 동식물들의 작은 모형이나 그것을 직접 점토나 종이로

제작한 조각들로, 나름 방향과 위치를 고려한 설치의 요소가 극적인 효과를 강화시켰다. <오래된

농담>은 직사각형의 공간 중심부와 가까운 가장 안쪽에 놓였고, 그 진입로에 <달을 보는 방법

>(2021), <텃새들>(2021), <작은 철새>(2021)이 각각 집 안에 걸린 액자나 손으로 정성껏 꾸민

장식품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박가연은 이 모든 것을 아울러 ⟪망월(望月)⟫(2021)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망월”(1.보름달 2.달을 바라봄)은 보름달의 둥근 모양을 묘사하는 말이기도 하고, 달을 올려

다 보는 누군가의 마음과 행위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전시에서는 망월이 둘 다의 의미로

쓰였는데, 하나의 (충만한) 실제 대상을 호명하는 단어[망월]가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결핍을 채

우려는 끝없는 열망을 동시에 뜻함으로써 이중의 역설을 함의하고 있다. 보름달 같은 둥근 조명

이 팔각 도형의 중심으로부터 쏟아져 나와 터 위의 살림과 삶의 면면을 넓게 비추면서, 동시에

노란색 보자기 천 위에 쌓아 올린 삶의 소망은 보이는 것을 너머 보름달이 뜬 팔괘의 세계로 (구

조상) 수렴하게 되어 있다. 이는 삶과 죽음, 소유와 결핍, 욕망과 금지, 안과 밖, 음과 양, 낮과 밤

등 모든 대립하는 것들의 비밀스럽고 분열적인 병렬과 공존을 환기시킨다.

**

박가연의 <오래된 농담>은 ⟪은둔자의 밤⟫(2019)에서 중심 서사를 이끌었던 <밤 끝을 위한 여행

>(2019)과 하나의 대구를 이루듯 맞닿아 있다. 그것은 상여를 태운 흰 조각배였고, 바닥은 검은

어둠을 드러내고 있었다. <망월>의 조명이 은유하는 보름달처럼 <밤 끝을 위한 여행>에서는 천장

한쪽 모서리로부터 회전하며 달의 궤도를 그리듯 주위를 비추는 빛이 출현했다. 배에는 상여를

둘러싸고 흰 꽃이 만발했는데, 결혼식에서 장식으로 쓰는 종이꽃을 사용했다. 웨딩드레스 용 흰

시폰천으로 (죽은 이를 모신) 상여를 두르고, 이 배는 삶과 죽음의 문턱을 떠돌면서 또 다른 통과

의례를 치르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때, 꽃가마와 교차하는 꽃상여의 형상은, 현실의 결핍과 부재

를 메우며 삶에 대한 초극을 표상하는 (비)실제적인 현실의 공간이다.

⟪망월⟫에서의 <오래된 농담>이 집/터에 관한 현세의 기복 신앙 서사를 끌어왔다면, ⟪은둔자의

밤⟫의 <밤 끝을 위한 여행>에서는 죽음 이후의 (열린) 장소를 향한 초월적 회귀를 상상해냈다.

여기서, 박가연은 각각 “보자기”와 “배”를 하나의 공간으로 상정하여, 그 위에 인간 형상의 숱한

흔적들을 하나의 은유적 형태로 실어 현실에서의 현실 너머로 “표류하는 장소”임을 암시했다. 실

제로 배(船)는 푸코(Michel Foucault)가 현실의 “다른 공간”으로서 헤테로토피아(heterotophia)의

장소로 논의한 예시였음을 생각해 보면, <밤 끝을 위한 여행>의 무대를 연출하는 이 배는 푸코가

말한 대로 “장소를 지니지 않는 장소”로서 “배는 그것만으로 존재하고 그 안의 공간으로 폐쇄되

어 있지만, 동시에 바다의 무한성을 향해 열려 있다”는 개폐 체계 안의 헤테로토피아로 현존한

다.[Michel Foucault, “Of Other Spaces”, Architecture-Mouvement-Continuit(1984, 10)]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농담>의 보자기 역시 공간의 개폐 체계를 함의하는 헤테로토피아로서

“보자기-보따리”의 “장소 없는 장소성”을 증명해 준다. 박가연은 ⟪망월⟫에 대한 작가노트에서 이

미 “전시장이라는 공간이 헤테로토피아로서 기능할 때 전시장 내에서는 바깥의 세상과 연결이 되

지 않는 새로운 공간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이 지점에서 바깥 세상과의 연결을 시키고자

했다”고 밝히면서,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자신의 작업 구조에 대한 설명으로 가져다 쓴

바 있다. 그것은 “망월”이라는 단어가 포괄하는 의미상의 구조이기도 하며, 팔괘와 보자기가 마주

보며 서로를 투영하듯 현실과 현실 너머의 서로 마주하는/대립하는 모든 (다른) 공간의 관계들을

규명한다.

어둡고 검은 바다 위에 표류하는 배처럼, 박가연은 ⟪작은 것들의 신⟫(2019)에서 구름과 광채

와 불꽃에 둘러싸인 검은 바위산을 삼면화 형식으로 표현한 <아주 깊고 어두운>(2019)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삼아 그 끝에 닿을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있는 당산나무 사진을 트레이싱지에 프

린트 하여 여러 겹 길게 늘어뜨린 (전시 제목과 동명의) <작은 것들의 신>(2019)을 병치해 놓았

다. 나는 ⟪작은 것들의 신⟫에 대한 전시 서문 「두 개의 마주보는 벽」(2019)에서 그가 전시공간

을 다루는 특유의 방식에 주목한 바 있다. 어떤 서사를 함의하는 연극적인 무대 연출 같은 설치

방식이 최근까지의 전시로 이어지면서 점차 강화되고 있지만, 그 안에 내재된 감각은 ⟪작은 것들

의 신⟫에서 보여준 것처럼 현실에 표류하고 있는 비현실적인 (다른) 공간/장소들과의 대면과 그

것이 세계 안에 현존해 나타나는 방식에 대한 조형적 실험에서 구체화된다.

이를테면, ⟪작은 것들의 신⟫에서 ⟪은둔자의 밤⟫을 거쳐 ⟪망월⟫로 이어지는 동안, 박가연은 인

간의 육체가 직접 대면하기 전에는 도무지 알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는 공간/장소를 향한 “문턱”

과 그것의 끝없는 연쇄 및 병렬의 고리를 찾는다. 그것은 주로 삶의 통과의례로 대표되는데, 그것

의 상징적 절차 너머 일체의 금기와 상징화 할 수 없는 마술 같은 시공간의 현존을 한껏 극대화

한다. 모든 의례의 순간은 무형의 신체적 경험에 의해 현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연출한 공간

들은 이 글의 제목처럼 대개 “너머”의 장소와 마주한 인간 형상의 흔적들이 즐비하다.

***

<오래된 농담>에서 그가 노란색 집 터에 들인 물건들을 보면, 전통 공예 형식의 고가구와 기물들

이 눈에 먼저 띄고 장식적인 조각품들이 가구와 기물들 사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이 고가구와

기물들은 그가 중고 물품 온라인 직거래 마켓에서 싸게 구입한 것으로, 사실상 고가구로서의 가

치 보다는 고가구의 형태를 흉내낸 모조품으로서 출처와 기원조차 알 수 없는 가짜 대리물에 불

과하다. 박가연은 이 모조의 전통 고가구 및 기물들을 받침대 삼아 자신이 만든 열 한 점의 조각

품을 진열해 놓았는데, 그가 여기서 주목했던 것은 그것의 진위 여부와 상관 없이 전통과 상징

체계 내에서 유효해 보이는 오래된 물건들이 사물로서 구축하고 있는 현실에서의 초월적 세계와

의 공존일 것이다. ⟪망월⟫에 중첩된 이중의 서사처럼, 이 가짜 대리물들은 현실의 (원초적인) 부

재/결핍을 표상하는 대체물의 반복적인 연쇄를 보여주면서 정착이 아닌 표류하는 집으로서의 “보

자기”에 올려져 또 하나의 “다른 공간(들)”과의 접촉을 끊임없이 도모하고 있다.

박가연은 이 (특정하기 힘든) 오래된 물건들 위에 삶의 태도로서 동일한 염원(望月)을 가지고

현실 너머의 세계를 암시하는 기복 신앙의 형상들을 조합해 구축해 놓았다. 동시에 이 행위는 미

학적 태도로 재해석돼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삼차원적인 받침대 위의 고전적인 조각에 대해 환기

시킨다. 말하자면, 그는 그가 만든 조각 열 한 점을 한데 올릴 조각의 받침대로 이 가짜 고가구와

기물들을 변환시킨 셈이다. 그것은 조각적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데, 특정 대상[원본/이

상]에 대한 모각[대리/현실]에 따른 삼차원적 대체물로서의 조각은 실제 공간을 구축적으로 점하

고 있는 현실에서의 실제 효과를 현상학적으로 드러내지만, 동시에 조각을 위한 받침대의 초월적

이고 자율적인 시공간의 폐쇄가 조각을 조각 자체의 내적 논리 안에 묶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임의의 상태에 가져다 놓기도 한다. 이에, <오래된 농담>에서 노란 보자기 위의 살림들은 현실과

현실 바깥의 영역을 사물로서 혹은 조각으로서 매개함으로써, 규정하기 어려운 비결정적 공간의

현전을 보고 사유하게 한다.

예컨대, 십장생이나 토속 문화 등에 관한 기복 신앙의 서사를 조각적 행위에 중첩시켰던 시도

는 ⟪은둔자의 밤⟫에서도 “꼭두”의 형식으로 조각적 행위와 맞닿았던 바, 박가연은 일련의 절차들

속에서 조각이 재구성하는 공간적 성찰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이름 없는 자의 노래>(2019)에서,

그는 석분점토와 먹을 사용해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꼭두를 만들어 상여를 태운 배가 있던 전시

공간의 또 다른 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작은 것들의 신⟫의 <아주 깊고 어두운>에 등장한 검은

바위산을 소형 조각으로 만들기도 했고, 잉어나 양의 형상도 있고, 뱀과 염소의 형상도 있다. 그

것들은 집 안의 가구 위에 잘 보이게 하나씩 올려 놓아도 좋을 장식물처럼 만들어졌지만, 박가연

은 그것을 편마암으로 만든 받침대 위에 올려 흰 색 선반 위에 펼쳐 놨다. 일련의 소형 조각들에

“꼭두”의 서사를 교차시켜, 박가연은 이렇게 되풀이 되는 조각적 대리물이 현실의 장소[장식품]

와 그 바깥의 범주[수장품]를 실제적으로/물리적으로 매개하는 사건을 촉발시키는 것이다.

한편, <뱀을 낚는 시간>(2019)에서 주목해 볼 것은, 사물이 (시공간을) 표류하는 방식이다. 세

개의 대나무 장대를 서로 교차시켜 수직으로 대칭하는 삼각형의 구조물을 만든 박가연은, 구조물

아래 백반을 한 움큼 가져다 놓고 뱀을 잡는/쫓는 형상을 구축했다. 뱀을 잡으려는 염원과 그것

을 쫓으려는 불안이 공존하면서, <뱀을 낚는 시간>의 대나무 장대는 <밤 끝을 위한 여행>에서 상

여가 나가는 행렬의 선두에 세워질 깃대와 연결된다. 이는 <아주 깊고 어두운>의 바위산이 <이

름 없는 자의 노래>에서 꼭두 형태의 조각으로 재인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은 것들의 신>에

서 당산나무 이미지 밑에 매달려 그 큰 이미지들을 중력 방향으로 잡아 당겨 지탱해주는 작은 돌

멩이들이 <이름 없는 자의 노래>에서는 꼭두의 형상들의 받침대 노릇을 하는 작은 돌로 다시 출

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각적 형태들의 끝없는 모각/복제와 공간적 표류를 부분적으로 환기시

킨다. 이처럼, 박가연은 전시 공간에 대한 극적인 연출에서부터 시작해 그가 주로 참조하는 서사

와 그가 주로 접근해 온 조각적 행위 및 형태는, 일제히 열린 공간으로서 표류하는 “다른 공간들”

에 대한 인식을 사유하도록 한다. 때문에, 그의 작업에는 언제나 다른 공간으로서의 “너머”의 장

소와 대면하는 인간 형상의 흔적들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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